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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성공기] 무일푼에서 수백억 번 자산가 이야기

김순실 2021. 7. 4.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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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중반인 Y씨는 부자다. Y씨가 부자가 된 과정은 ‘아, 사람이 저렇게 하면 돈을 벌 수 있구나’ 할 정도로 단순했다. 마치 알이 병아리가 되고, 닭이 되고, 돼지가 되고, 소가 되는 식이었다.

 

지방에서 태어나 그 지역에서 대학까지 졸업한 Y씨는 고향에서 딱히 할 일을 못 찾고 서울로 올라와 지인과 영등포에서 작은 공구상을 시작했다. 하지만 첫 사업은 지인의 배신으로 금방 접어야 했다.

 

졸지에 무일푼이 된 그는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 당시에 큰 인기를 끌었던 비디오방을 시작했다. 한 푼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해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손님들에게는 쿠폰을 발행해 10번 오면 1번은 무료로 해주고, 30번을 오면 금반지를 사은품으로 주면서 단골손님을 늘렸다. 악착같이 돈으로 모아 1년 만에 빚을 갚고, 다시 1년 동안 돈을 모아 또 다른 비디오방을 개업했다. 가게가 하나 더 생기니 돈을 모으는 속도도 빨라졌다. 또 다시 1년 뒤에는 가게가 하나 더 늘어났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된 Y씨는 이번에는 요식업으로 눈을 돌렸다. 유동인구가 많은 종로에 있으면서도 불과 몇 미터 차이로 장사가 덜 되는 탓에 권리금도 없고 임대료도 저렴한 건물을 통째 임대해 민속주점을 개업했다. 권리금도 없었고 공교롭게 대로에 있는 지하상가가 공사를 하는 바람에 사람의 흐름이 바뀌었다. 그가 개업한 민속주점이 순간에 중심상권이 된 것이다. 가게는 손님으로 넘쳤고, 순풍에 돛단 듯 장사가 잘 됐다.

Y씨는 남과 다른 획기적인 영업전략을 쓰기도 했다. 술집에서 술을 공짜로, 그것도 한두 병이 아니라 손님이 달라는 대로 다 공짜로 주는 놀라운 발상을 실천에 옮겼다. 잔돈푼에도 집착하는 게 장사하는 사람의 본능인데 당연히 돈을 받고 팔아야할 술을 공짜로 준다는 것에 대해 손님들은 좋아하면서도 의아해했다.

 

다른 업소 주인들도 그의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전략은 손해만 안겨줄 것이라며 비웃었지만 그의 계산은 달랐다. 안주 없이는 술을 마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술값이 안 나간다는 생각에 손님들이 안주를 더 시키는 데 인색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소주 두 병에 안주 하나 파는 것보다 소주 세병을 공짜로 주고 안주를 두 개 파는 게 훨씬 더 남는 장사라는 것이다.

 

공짜로 술을 주니 손님들이 무지막지하게 마셔댈 것 같았지만 술이란 마실 수 있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선에서 더 이상 술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간혹 ‘술이 죽나 내가 죽나 한번 해보자’는 식으로 객기를 부리는 손님도 있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였고, 그 손님에게 남는 것은 쓰라린 후회밖에 없었다고 한다. 남들이 봐서는 장사가 안 될 곳에 오픈을 하고도 장사가 잘 되었던 이유는 바로 그런 영업전략 때문이었다.

 

그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가게는 권리금을 받고 넘기고, 목돈이 되면 또 다시 가게를 개업했다. 어느 순간 Y씨는 서울 중심상권에 10여개의 가게를 갖게 됐다. 가게가 늘어갈수록 수입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가게 한군데에서 나오는 순이익은 적게는 수백만 원에서 많은 곳은 수천만 원에 이르렀다.

 

돌아다니며 관리하는 것도 버거워지자 더 이상 업소를 늘리지 않고 5층짜리 건물을 매입해 한식당을 개업했다. 물론 그곳도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여름철이 되자 그는 보냉통에 냉면육수를 담아 문 밖에 내놓았다. 그 옆에는 ‘드시고 싶으면 마음껏 드시라’는 친절한 안내문과 종이컵이 놓여있었다. 냉면이 워낙 마진이 좋아 손님이 오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실제로 여러 메뉴 가운데 냉면을 판 이익금만으로 20명이 넘는 직원들 월급이 해결될 정도였다고 하니 그의 ‘퍼주는 영업전략’은 성공한 셈이었다.

 

이번에는 더 큰 건물을 매입했다. 외환위기시대에 가격이 반쪽이 된 건물이었다. 당시 구입가격은 70여억 원, 현재는 250억 원이 넘는 알짜배기를 헐값에 차지한 것이다. 새 건물에서 3개 층은 Y씨가 직접 영업을 하고 나머지는 임대를 내줬다. 그 사이 한식당을 했던 건물을 매입 가격보다 두 배에 팔았다. 영업해서 돈 벌고, 건물로도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다.

 

그는 이번에는 고향에 땅을 샀다. 신시가지가 조성되면서 상가지역으로 급부상하는 지역이었으니 가격이 많이 뛸 것이란 계산 때문이었다. 그런데 고향을 떠난 지 오래된 그의 선택은 빗나가고 말았다. 그가 땅을 매입하던 시점에는 이미 가격이 많이 올라 있었고, 지방의 부동산은 서울과 달리 폭등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승승장구하던 그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실패라는 기록이 남는 순간이었다. Y씨는 ‘훗날 애물단지로 전락하기 전에 팔아치우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매물로 내놓았다가 얼마 후 다시 거둬들였다. 맨땅을 파는 것보다 건물을 지어 영업을 하다가 팔면 땅의 가치도 상승하고, 영업이익을 통해 건축비도 건질 수 있다는 계산이 선 것이다.

 

그 지역에서 가장 멋진 웨딩홀을 짓겠다는 결심으로 지체 없이 공사를 시작했다. 그의 예상은 주효했다. 영업으로도 성공을 했고 부동산에 대한 가치도 상승한 것이다. 초기 땅값과 건축비에 100억 원 정도가 들어갔는데 현재는 2~3배의 가치로 평가되고 있다.

 

불과 10년 전 남의 돈을 끌어다가 비디오방에서 먹고 자고 돈을 모으던 시절에 비해 강산이 한번 변하는 동안 수백억 재산가가 되어 ‘엄청 큰손’의 반열에 오른 Y씨의 성공담은 그 주변 사람들에게는 자극제였다. Y씨처럼만 하면 누구라도 쉽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를 따라 하고자 하는 사람도 여럿이 있었다.

 

Y씨가 많은 업소를 탈 없이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사람들 덕분이었다. Y씨는 매장의 관리자를 뽑을 때 과거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나 선후배들을 뽑으면서 약간의 지분투자를 요구했다. 오래 전부터 아는 사람이라 믿을 수가 있고, 투자를 하게 함으로써 그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도록 한 것이다. 지분율이 적으니 이익배당도 적을 수밖에 없지만 투자를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컸다.

 

하지만 Y씨를 따라 움직였던 사람들은 대부분 부자가 되지 못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그와 같은 위치가 아니라 뒤를 따라갔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자면 Y씨는 여름이 오기 전에 선풍기를 팔기 시작한 사람이었고, 그의 추종자들은 여름이 다 지나가고 파는 모양새였다. 결국 운전대는 Y씨가 잡고 있었고 그를 흉내 냈던 사람들은 승객일 뿐이었다. 목적지는 운전대를 잡은 사람이 정한다. 승객은 그저 타라는 데서 타고 내리라는 데서 내릴 수밖에 없다.

 

Y씨가 큰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미혼이라는 것이었다. 가게를 새로 인수하거나 건물을 매입할 때는 전세금까지 털어 넣고 찜질방에서 자거나 친구 집에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딸린 식구가 있었다면 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것과 남겨야하는 것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Y씨는 일단 해야겠다는 판단이 서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과감하게 추진하는 스타일이었다.

 

남들은 그저 운이 좋아 성공했다고 말할지 몰라도 그 운은 노력하고 고심하며 앞을 내다본 연구의 결과였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철저히 아끼고 원칙에 충실했다는 것이다. 그는 결코 저절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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